별로 눈에 띄지 않는 동물로 태어난 호모 사피엔스는 약 7만 년 전 어떤 돌연변이에 의해 인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인지 혁명 덕분에 언어가 등장하였고, 단지 사실의 전달을 넘어 가십을 즐기고 상호 주관적인 상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피엔스는 150명도 훨씬 넘는 개체가 협업할 수 있게 되었다. 협업을 통해 사피엔스는 자신보다 훨씬 힘이 센 다른 인간(네안데르탈인 등) 형제들을 몰살하여 지구의 유일한 인간이 되었다. 형제들 뿐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가 가는 곳에는 많은 수의 종이 멸종하였다.
약 12,000년 전 농업혁명이 시작되었다. 밀을 재배하며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사피엔스가 수렵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진보함에 따라 그들의 생활 여건이 크게 개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부 엘리트 층을 제외하고, 그들은 그들의 풍요로운 수렵채집인 조상들에 비해 훨씬 많은 노동을 하면서도 영양부족,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생활여건이 오히려 악화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기억해야 할 정보량은 인간 뇌의 능력을 크게 벗어났다. 이는 글자의 발명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한편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호 주관적인 상상물인 법, 자유주의, 낭만주의 등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런 상상 속 질서는 항상 정의로운 것은 아닌데, 카스트 제도, 노예 제도, 인종 차별, 남녀 차별 등은 생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두고 있기보다는 편견과 근거 없는 신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농업혁명 이후로 사피엔스는 점점 더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역사의 큰 흐름은 전 지구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합쳐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통일 과정에 기초를 놓은 것은 이번에도 역시 상호 주관적 상상물인 화폐, 제국, 종교이다. 화폐는 교환의 편의성을 위해 등장했고, 그 가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줬다. 제국은 그 광대한 영토 안에 여러 색의 문화를 하나의 색으로 합쳤다. 종교가 가장 흥미로운데, 종교는 광범위한 사회 질서를 정당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종교를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규범으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체계'라고 정의한다면, 현대의 많은 '이데올로기' 즉, 자유주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등은 모두 이 시대의 종교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 인본주의 종교들은 기독교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화다.
불과 500년 전 사피엔스는 과학혁명을 맞이한다. 과학혁명은 스스로 무지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유럽인들은 무지를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발견하여 진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제국주의의 이득과 맞물려 서로를 정당화하고 보호했다. 자본주의는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무한정 증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과학은 새로운 에너지 발견 등으로 이를 실현시켰다. 과학혁명 이전에 우리 생활 모습은 큰 변화 없이 그만그만한 수준이었지만, 과학혁명 이후의 우리 생활 모습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조차 감당할 수 없어서 빠른 시일 내에 사피엔스는 스스로 멸종해버릴지도 모른다. 생명공학, 사이보그로 탄생하게 될 초인류를 우리와 똑같은 사피엔스라고 부르긴 어렵다.
2백만 년, 짧게는 호모 사피엔스 출현 후 20만 년 역사를 거듭하면서 인간은 과연 진보했을까? 진보했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이 아니라 1,0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난 지금보다 덜 행복했을까? 부의 총량으로만 따진다면 세상은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사회 영국의 노동자가 중세 도제보다 행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최근 몇십 년 동안 유례없는 평화가 지속되고 있고, 굶주림이나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는 속도에 비해 몇십 년은 안심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또한, 사피엔스가 아닌 지구의 다른 생물, 생태계는 사피엔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고통받고 있다. 친구 하나 없이 오직 성장만을 바라며 우두커니 서 있는 우리 사피엔스가 외로워 보인다.
사피엔스 - YES24
인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가장 논쟁적이고 대담한 대서사문명의 배를 타고 진화의 바다를 항해한 인류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변방의 유인원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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